Exhibition
Silver Lining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Minhoon Kim, Wingless Groundless Torso 01, 2025, Over rubber tree wood, over silver powder paint, over rings and threads with lead weights, 85 x 24 x 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drawingRoom.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벽의 금, 나무의 갈라진 틈, 오래된 선반 위에 남은 먼지와 함께 굴러다니며, 우리 주변에 함께 존재해 왔다. 어쩌면 빛은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일지도 모르지만, 인간들은 그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발견한다. 자연의 빛은 아무리 밀봉하려 해도 작은 틈만 있으면 흘러 들어와, 시간과 기억 속에서 눈에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빛줄기를 통해 전시 《실버라이닝》은 이러한 틈과 빛을 따라, 시간을 되돌아보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들을 관찰하려는 시도다.
작은 틈과 빛을 떠올리며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빛과 뗄 수 없는 사진은 전명은의 작업에 다다라, 사진이 품고 있는 빛으로 드러난다. <무제(금굴)>는 동굴의 안쪽에서 바깥을 향해 있다. 안의 크기를 상상할 수 없는 입구를 지나 거대한 내부로 들어가며 작가는 앞으로, 앞으로, 빛을 등지고 어둠으로 향했다. 촬영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어둠에서 빛으로, 작가는 이것을 찍으러 온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너른 수선화밭을 마주한 채 멀리 빛이 보인다(<오래된 집>). 분명 인화된 사진임을 알고도, 붉게 전진하는 빛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횡으로 이동하는 빛은 어둑해진 세상에서 혼자만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작가의 사진에서 드러나는 시간은 빛과 어두움의 세계를 촉각적으로 전환한다. 이 맞은편, 무언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배클렘트 #39>). 바다생물 나무조각을 촬영한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다시금 동굴의 안쪽에서 바라보는 빛과 어두워진 바다에 지나가는 배, 심해어를 대신한 물고기 조각까지,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시선을 떠올린다.
종횡무진 바다를 누비던 배의 돛과 닻은 바람과 땅을 잃은 몸(‘날개 없고 땅 없고 몸’ 연작)이 되었다. 날개 달린 듯 앞을 향하는 돛과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커다란 몸체를 정박시키려는 닻은 김민훈에 의해 섬세한 손끝으로 겹쳐진다. 더는 본래의 기능이 없이 상징 언어로 존재하는 이 종횡의 조각은 제도와 규범에서 항해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조각적인 코멘터리”이다. 산업 폐기물을 몸체로 하여 시멘트를 표피로 삼았던 이전의 기둥에 비해 이번에 선보이는 기둥(‘태움 춤노래’ 연작)들은 숯과 시멘트 자체로 몸의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점한다. 숯을 동그랗게 두고 시멘트를 발라 켜켜이 쌓은 이 기둥은 ‘조적’의 전통을 뒤따른다.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숯의 틈 사이로 시멘트가 들어가 더욱 단단히 결합하는 방식으로 인해 “작은 파편들이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결합의 방식은 김민훈이 자유롭게 구사하는 매듭의 어법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작가의 매듭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전통매듭’과 ‘마크라메’의 방식을 넘나든다. 마치 한붓그리기처럼 긴 줄을 반으로 접어 중심에서 양쪽을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전통매듭은 조이고 푸는 힘이 중요하다. 이에 반해 마크라메는 과정에서 줄을 추가할 수 있으며, 그 사이 조이는 모든 힘이 무늬가 된다. 지나온 모든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세계와 힘의 강약을 통해 세상의 요소를 상징하는 세계가 김민훈의 작업 안에서 교차한다.
임선구는 그동안 기억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건설하기 위해 종이의 물성을 극한까지 탐구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이면에 오직 낱장의 종이와 연필로 자신의 기억을 붙잡아 두는 작가의 모습이 있다. 임선구의 작업에서 문은 또 다른 세계로 가는 텔레포트이자, 자신의 기억으로 향하는 통로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과 그 옆, 안쪽에서 보는 방의 풍경(’비스듬한 방’ 연작)에서 순차적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공간의 물리적 구조는 의미를 상실한다. 기억은 시간과 장소의 원근을 따르지 않고 편집된 채 이곳저곳으로 이동한다. 갑작스레 떠난 작가의 반려동물을 떠올리며 시작했다는 ‘그 새벽은 가지 않을 듯이’ 연작에서는 위에서부터 하늘에 별이 가득한 시간, 그 아래 깊은 숲과 꽃밭을 지나 마치 작은 생명체가 늘 함께했을 따뜻한 집의 거실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죽음을 마주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숨기며, 또 누군가는 이미 떠난 이를 그리워한다”라는 문장을 변환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과 함께 시공간이 뒤섞이며 그리운 이를 쫓으려는 경험과 공명한다.
세 작가의 작업은 각기 다른 매체와 형식을 취하면서도, 공통적으로 우리가 쉽게 지나쳤을 수 있는 순간과 공간을 새롭게 환기한다. 그들은 틈새로 새어 나온 빛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열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재현을 넘어, 시간이 겹치고 흔적이 이어지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기억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전시 《실버라이닝》은 이처럼 찰나의 순간에서 발생하는 가능성을 통해 잊힌 것을 되살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를 통해 빛을 따라 우리가 지나쳐온 틈새를 응시하며, 그곳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다시 읽어내는 장이 되기를 제안한다.
기획/글 민지영
Sungoo Im, Spoken Words, Gazes Cast, Wandering River, 2018, Graphite on paper, 145 x 15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drawingRoom.
Eun Chun, Old House, 2024, Archival pigment print, 48 x 36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drawingRoom.
2025. 10. 03. (Fri) – 2025. 10. 31. (Fri)
drawing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