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Slow Bump

INSTALLATION VIEW “Slow Bump“, 2025. Courtesy of the Artist and A-Lounge.

 

「(De-accel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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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달려 온 끝에서야, 비로소 너무 빨랐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속은 자유의 징표처럼 보인다. 길고 긴 터널을 몇 번이나 지나고 신호등 하나 없이 쭉 뻗은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동안, 세상은 보이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진다. 바람을 가르며 사라지는 풍경들, 번짐 속에 삼켜진 거리들. 그 모든 건 무심한 속력 앞에서 희미하다. 천천히, 느리게, 서행하기. 국도에 진입해 과속방지턱을 만날 때, 지난 시간들의 속도를 반추하고 지금 그 앞에서 줄인 새로운 속도를 마주한다. 감속의 자리에 도달해서야, 지나쳐 온 세계가 나를 향해 돌아온다.
가속은 인간을 자신이 사는 세계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시켰다.1) 지난 십 년간, ‘가속주의’는 진보를 그려 내는 언어이자, 인간의 성장을 과시하는 은유처럼 기능해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확장의 가능성보다 소진된 몸이었다. 이는 정서적, 신체적 닳음은 물론 사회적 관계, 소통의 문제에서마저 마모된 우리를 발견케 했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해내는 행위는 능력의 향상이 아닌 능력의 과잉이었다. 기술이 약속한 무한한 진보(우리는 그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에 발맞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처지(이 또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비관할 수밖에 없는 습관이 삶의 생리가 되었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는 의지는 점점 흐려졌다. 그런 헛헛한 마음에 무엇이 우리의 생기를 다시 북돋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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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리의 회화가 만드는 화면은 공간과 시간을 다룬다. 그는 지금까지 3D 프로그램에서 광원, 바람, 중력의 수치를 조정해 가상의 장면을 설계하고, 이를 캔버스 위에 물감, 에어브러시, 기름으로 다시 구현해 왔다. 그동안의 중심축이 무한히 확장, 변형되는 가상공간을 상상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실제 경험과 기억의 층위에서 출발한다. 가상이라는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실체에 눈을 옮긴 것이다. 이 전환은 꽤나 의뭉스럽고도 신비하다. 그것이 돌발적인 선회라기보다 이미 그의 시선 깊숙한 곳에 잠재해 있던 현실을 받아들이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 도래한 전환은 역설적이게도 근원을 들여다보기의 맥락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의 이미지들은 만들어 낸 장면보다 지나온 장면에서 기원한다. 그는 예측의 시간을 잠시 접어 두고, 회상의 시간을 살핀다. 여기에는 그가 설정한 장소적 배경이 전제되는데, 이는 회화의 시공 속에 현실의 시공을 사유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는 조건이 된다. 지난해, 조효리는 밴쿠버, LA, 서울을 경험했다. 밴쿠버의 시린 추위에서 LA의 온화한 햇빛까지, 비행기로 세 시간,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보낸 이후의 수많은 시간들. 차분히 밟아 나간 여정에서 그는 소박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들을 회화의 시작으로 삼아 보았다.
전시 제목 《Slow Bump》는 ‘부드럽게 넘어가기’의 기술이다. 이는 멈추라는 지시가 아니라, 일 보 전진하기 위해 속도를 줄여 보라는 요청이다. 최근의 회화에서 조효리는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제공하는 매끈한 시야, 예컨대 블렌딩(blending)과 렌더링(rendering)의 결괏값을 그대로만 모사하는 대신, 보도블록, 울타리, 표지판, 차창, 고양이의 잠, 물방울의 맺힘 같은 아주 사소한 저항들로 일부러 시야를 걸리게 만들었다. “좋은 것은 그냥 스치지 못한다.”2) 라는 그의 갑작스럽고도 유치한 고백처럼, 이곳의 회화에는 단순하지만 가장 사적이고 충만한 의미에서의 ‘좋음’을 지나치지 않고 느리게, 천천히 붙잡으려는 시도가 녹아들어 있다. 그렇게 포착된 장면들은 캔버스로 옮겨졌고, 어떤 부분은 에어브러시의 얇은 층으로 쌓였으며, 어떤 부분은 기름 섞인 유화의 마찰로 남겨졌다. 번짐과 두께, 의도적으로 내버려둔 투박함이, 화면에 담으려는 속도를 빗댄다. 끊김없이 연산되는 디지털의 시간, 붓과 표면, 기름이 부딪혀 파생되는 물리적인 시간 사이에서 이곳의 회화는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이, 조효리의 여정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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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라는 바대로, 천천히, 그의 속도에 맞추어 전시를 들여다보자. 1층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건 목재 울타리다. 이는 조효리가 LA 주택가 어딘가에서 마주한 풍경의 한 요소로, 자신이 달려온 과거를 되돌아 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골몰하게 만든 구조물이자 가림막인 동시에 입・출구다. 실제 이 울타리는 닫혀 있었으나, 그는 유머를 발동해 마치 이것이 문인 양 슬쩍 한편을 갈라 젖혔다. 자신이 가는 길을 막아 멈춰 세우는 방해물을 떠올리면서, 그것이 또한 자신이 마음껏 전복시켜 버릴 수 있는 대상임을 믿으면서. 이 사소한 제스처에서 우리는 서서히 열려 가는 세계, 달리 말해, 가속화된 체제 속에서 다른 속도를 모색하려는 의지를 마주한다.
문틈 너머에는 ‘출구(exit)’ 표지판이 붉게 빛나는 강렬한 소실점의 회화가 두 점 걸려 있다. 저 멀리, 더 멀리…. 바깥으로 뻗어가고 싶게 하는 공간감으로 가득한 그림 안에 그려진 것은 조효리가 LA에서 묵었던 아기자기한 숙소다. 네모반듯하게 쳐진 내부의 또 다른 울타리, 복도와 중정은 우리를 끝없는 외부로 향하게 하다가도, 내부를 빙글빙글 돌게 하며, 이 전시장에 쳐진 울타리 안쪽으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이때 “KEEP GATE CLOSED”라 적힌 울타리의 경고문은 문자 그대로의 지시에서 벗어난다. 출입을 통제하던 기호가 슬며시 열린 이곳을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본능을 건드릴 이미지로 전환된다. 그렇게, 울타리와 세 점의 그림들은 계속해서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을, 이 공간을 지시하고 또 지시한다.
2층에 오르면 한 번 더 그 울타리를 만난다. 세 점의 캔버스로 구성된 회화 〈Five-way Intersection〉은 사실 1층에서 본 목재 울타리 작업의 원형인 장소를 그리고 있다. 좌우에 보이는 주택들처럼, 멀리멀리 뻗어갈 것 같은 주거지 군락이 화면 중앙을 가로막는 울타리로 인해 차단되었다. 그러나 그 아래, 왼쪽, 중앙, 오른쪽으로 갈라진 세 개의 도로가 흔적처럼 남은 것이 보인다. 화면 앞에는 제스모나이트로 찍어낸 보도블록이 놓였다. 새로운 도로가 추가되었고, 이제 이곳—그림 속 공간과 그림 밖 공간—은 오거리라는 총합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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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울타리를 변주한 작업들을 지나게 되면, 우리는 멈춤과 전진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속도를 늦춘다는 것이 보다 능동적인 바라보기를 가능하게 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여행 중간중간, 조효리가 문득 멈춰 바라본 장면이 이번에는 회화적 구조의 주축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목격되고 재현된 풍경으로만 기능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 속도를 가늠하게 하는 지시문으로 변한다. 롱비치 해변에서 마주한 꽃과 바다, 모래의 낯선 조합은 화면 위에 울퉁하게 부착된 ‘Slow Bump’와 그 곁의 줄무늬를 통해, 공간과 서사로의 진입을 잠시 멈추게 한다(〈Slow Bump〉). 트럭과 그 위의 커다란 두 강아지는 압축-변형되어 있고, 차 문에는 실루엣처럼 새겨진 강아지의 윤곽과 반사된 나무들이 초현실적으로 나타난다(〈Buddy〉). 공룡을 닮은 나무는 정말로 공룡처럼 기묘하고 유쾌하게 그려지고(〈Tree Tunnel〉), 자전거와 고양이는 그 사이를 오가며 재현된 풍경 속으로 스며든 화가의 진실된 손길을 드러낸다(〈Bike〉, 〈Sleeping Cat〉).
한편, 〈Mirror on Palm Tree〉, 〈To Telescope〉, 〈Set time automatically “off”_at the dock〉, 〈Pass by_2025〉, 〈Fasten seat belt while seated〉는 조효리가 꾸준히 탐구해 온 ‘지각의 오작동’을 다시금 꾸며 낸다. 거울, 행성, 물방울, 좌석 등은 모두 세계의 반대편을 비추면서 동시에 차단하는 막으로, 공간 속으로/밖으로 오가려는 우리의 상상력을 투사한다. 반사와 투명, 겹침과 막힘의 표면 위에서 세계는 단일한 소실점을 잃는다. 시선의 “외분점”3) , 즉 화면 바깥의 세계와 화면 안의 세계가 교차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불안정한 지각의 구조 속에 실제의 풍경—여행에서 마주한 하늘, 네온사인, 물결, 피어(pier), 빛 같은 현실의 단서들이 병치된다. 이렇게 재구성된 화면들은 반영과 차단, 깊이와 평면,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는 접면에서 ‘보는 행위’의 자리를 다시 자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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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들, ‘KEEP GATE CLOSED’, ‘Set Time Automatically “off”’, ‘SLOW BUMP’는 경고가 아니라 지각의 속도를 조정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닫힌 문을 살짝 여는 행동, 시간을 자동으로 맞추지 않겠다는 선택, 속력을 줄이라는 요구는 가속된 세계 속에서 세상을, 나아가 나 자신을 바라보려는 시도로 읽힌다. 표지판의 명령은 해체되고, 그 자리에 주체적인 시선이 들어선다. 멈추기, 머물기, 조율하기, 다시 보기. 그렇게 세상을 향한 시야는 넓고 깊어지며, ‘나’와 세계는 공명하는 관계로 다시 맺어진다. 하르트무트 로자가 말했듯, 근대성의 핵심인 가속이 우리를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속을 통해 공명을 회복하는 것이다.4) 공명과 회복. 그것은 어쩌면 조효리가 자신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을 ‘돌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런 반추의 일환으로,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 작업들을 불러낸다. 보도블록이 된 제스모나이트 표면에는 이전 회화에서 다뤘던 레이저 컷팅의 잔편이 눌러 찍혀 있고, 2020년에 처음 작업으로 등장한 문장 ‘Set Time Automatically “Off”’는 선언처럼 호출된다. 한때 화면의 일부였던 문양과 도형들은 보도블록의 요철로 변환되어 시간의 파편으로 남고, 주체성을 강조하던 문장은 현실의 시공을 파악해 보려는 새로운 다짐으로 새겨진다. 이미 지나간 세계를 그려 보기. 그리고 기꺼이, 이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기. 그 속에는 속도를 늦춘 다음 전진하려는 이의 낙관이, 의지가, 생기가 엿보인다. 또 한참을 달려가겠지만, 잠시간은 그럴 것이다.

1) 하르트무트 로자, 『소외와 가속: 후기 근대 시간성 비판』, 강명희 옮김, 앨피, 2020, 118-139쪽.
2) 조효리, 작가 노트, 2025.
3) 안소연, 「물체는 평면들로 덮여 있어서,」, 2021, 1쪽.
4) 하르트무트 로자, 『공명 사회: 위기의 민주주의 경청에서 답을 찾다』, 유영미 옮김, 니케북스, 2025.

글/ 김진주

 

INSTALLATION VIEW “Slow Bump“, 2025. Courtesy of the Artist and A-Lou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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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20. (Thu) – 2025. 12. 20.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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