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Layers of Condensation and Resonance

겹疊_응축과 파장

Ha Chong Hyun, Conjunction 19-30, 2019, Oil on hempcloth, 73 x 61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t Project Co.

 

겹疊_응축과 파장 《Layers of Condensation and Resonance》

“회화는 완성된 형상이 아니라, 지속되는 파장이다.”

한국 추상회화는 단순한 형식의 절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결을 담는 사유의 층이며, 반복과 밀도의 축적 속에서 형성되는 감각의 언어이다. 《겹疊_응축과 파장》은 바로 이 감각의 층위를 조명하고자 한다. ‘겹’은 시간의 레이어, ‘응축’은 내면의 침전, ‘파장’은 세계로 향한 감응의 진동이다. 이 전시는 회화가 어떻게 시간 속에서 축적되고, 응축된 사유가 조형으로 드러나며, 결국 관객의 감각에 도달하는지를 탐색하는 기획이다. 세대나 미술사적 위계를 따지지 않고, 각 작가의 회화적 개성이 지닌 고유한 진동에 주목한다. 단색화의 전통에서부터 물성 탐구와 감각의 해체까지, 겹겹이 쌓인 조형의 파장은 새로운 감응을 생산하며, 관객의 감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지금, 당신의 감각은 무엇에 진동하고 있는가? 이 전시는 작가 간의 위계를 만들지 않는다. 단색화의 창시자든, 동시대의 실험자든, 모든 회화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파장을 만들며 각자의 ‘응축된 세계’를 펼쳐낸다. 겹겹이 쌓인 회화적 시간은, 각기 다른 진동으로 관객의 감각에 흔들림을 남긴다.

1부 물질과 시간의 축적 – 전통에서 파장으로

박서보는 한국 단색화의 대표 주자로, 한지 위에 연필선을 긋고 물감을 덧입히는 반복 행위를 통해 무념과 수행의 시간성을 화면에 각인시켜 왔다. 그의 작업은 회화가 사고의 도구가 아니라 호흡의 연장이며, 행위의 증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선은 더 이상 형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파장이다.
하종현은 마포천 뒤편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접합법’으로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화면의 전면과 후면이 동시에 존재하며, 붓 대신 손의 압력과 밀도로 이루어진 그의 회화는 시각보다 촉각에 가깝다. 그는 물질과 행위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회화의 역전 구조’를 드러낸다.
최명영은 조형 질서와 색면의 분할을 통해 기하학적 추상을 실현한 작가다. 그는 명확한 색의 구획 안에 감정의 리듬과 균형을 숨기며, 형식적 안정성과 내면의 진동 사이의 간극을 정교하게 조율한다. 이성적 구조 속에 감성적 층위를 숨겨 넣는 방식으로 추상의 또 다른 온도를 제시한다.
김춘수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푸른 물성의 중첩을 통해 반복과 침잠의 감각을 표현한다. 색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감정의 파동으로 작동하며, 화면 위를 덮는 레이어는 정서의 층위를 시각화하는 장치다. 그의 회화는 응시를 통해 서서히 깊어지는 감성적 울림의 장이다.
김근태는 물질의 질감을 살리는 동시에, 반복적인 붓질과 여백을 통해 ‘공(空)’의 조형화를 시도한다. 그의 화면은 빈 곳이 가장 많은 정보와 감정을 담고 있으며, 직조하듯 쌓아올린 레이어는 곧 ‘비워냄의 미학’을 구현한다. 형상 없는 형상, 존재 없는 존재를 그린다.
김택상은 반투명한 색면 위에 중첩된 광택과 조율된 색의 비율을 통해 감각의 미세한 떨림을 회화화한다. 빛은 그의 작품에서 재료가 아니라 매체이며, 보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색이 변화하며 감응을 일으킨다. 화면은 정지된 공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된다.
이진우는 선, 도형, 구조, 반복을 이용해 회화와 건축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의 추상은 감각보다 구조에 가깝지만, 그 구조 속에 감정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세한 차이, 규칙의 균열 속에서 회화는 유기적으로 성장한다.
장승택은 무의식의 선과 중첩의 흔적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그는 선을 지우고 다시 긋는 과정을 통해 존재의 잔여를 드러내며, 화면은 마치 심리적 풍경처럼 흔들리는 내면의 지도 같다. 이 회화는 형상이 아니라 감정의 레이어를 통해 구축된다.
박기원은 색의 미세한 떨림과 수묵적 여백의 미학을 통해 고요하지만 깊은 감각을 구축한다. 그의 화면은 명징한 이미지가 없는 대신, 색의 농담과 여백의 비율로 이루어진 감성의 진동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가장 섬세하게 포착하는 회화 언어를 지닌다.

2부 감각의 세분화 – 파장 이후의 회화

김미경에게 회화는 이성적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과 우연의 흐름이 작동하는 공간이며, 그녀의 작업은 감정의 흐름을 시각적 에너지로 환원한다. 색의 밀도는 곧 감정의 진폭이 된다.
김이수는 붓 대신 마스킹테이프를 수백 차례 붙였다 떼며 색선과 잔선을 겹쳐 ‘환각적 색면’을 구축한다. 뉴욕 유학 시절 아그네스 마틴 등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후기 단색조 회화의 계보 속에서 독자적 기법을 확립했다. <Inframince-Landscape>는 수평축에서 수직축으로 변주한 색면 회화를 통해 하늘·바다·빛의 미묘한 층위를 구현한다.
신수혁은 회화와 오브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 언어를 구사한다. 화면은 깊이 있는 구조로 쌓여 있으며, 회화의 표면은 기억, 시간, 감정의 층을 축적하는 매체로 기능한다. 그는 감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감각을 ‘꺼내 보이게 하는’ 회화를 실험한다.
윤상렬은 샤프심과 디지털 프린트를 병행해 0.01~2.56mm의 직선을 종이와 아크릴 위에 그어, 감성과 이성의 간극 속에서 빛과 그림자의 환영을 만든다. 화면은 단순한 평면을 넘어 ‘작용과 반작용’의 심리적 울림과 촉각·시각의 다층적 관계를 드러내며, 두려움과 평온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품는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적 설계와 미학적 선택이 결합된 작업은 구조적 정밀함 속에서 새로운 회화적 어휘를 제시한다.
윤종주는 안개·새벽빛 같은 미묘한 공기와 온도감을 포착하기 위해 수십 차례 물감과 미디엄을 겹겹이 붓고 말리는 수행적 색면 작업을 이어간다. 개별 모듈 캔버스를 띄어 배치해 빛·그림자와 건축적 요소를 품는 확장형 구성으로, 장소특정적 설치에서 색과 공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섬세한 취약성과 감각적 육감성을 동시에 품으며, 시간과 호흡하는 빛의 표면을 만들어낸다.
편대식은 반복과 오버페인팅을 통해 회화 표면을 감각의 아카이브로 만든다. 선과 형상의 반복 속에 시간의 누적이 발생하고, 그 흔적은 기억의 리듬을 닮는다. 화면은 보기보다 ‘느끼는’ 회화를 지향하며, 축적된 감각의 물리적 증거가 된다.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Lee Jin Woo, Untitled, 2013, Oil on Canvas, Korean paper, charcoal, pigment, 48 x 32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t Project Co.

 

Park Set Bo, Ecriture No.970715, 1999, Mixed media with Korean paper, 97.2 x 130.5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t Project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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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8. 28. (Thu) – 2025. 09. 20.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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