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Kim Doyeon, Yoon Jiyoung, Ian Ha, LeeKoz | Butterfly Dreams

김도연, 윤지영, 하승현, 이코즈 | 나·비·꿈

INSTALLATION VIEW OF “Butterfly Dreams”, 2024,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A-Lounge.

현실의 경계에서

장자는 어느 날 너무나 생생해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운 꿈을 꾼다. 나비가 되어 희희낙락 날갯짓하며 춤을 추는 꿈. 그 속에서 장자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알지 못한다. 마치 내가 원래는 나비이고 반대로 꿈속에서 장자로 살아가는 것만 같다.

1990년대 초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www)이 도입되면서 점차 정보의 획득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어디서든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누구든 평등하게 지식을 습득하고 투명하게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고, 이는 유례없던 경제적 성장과 맞물리며 전 인류가 어딘지 모를 발전의 종착점으로 빠르게 달려나가는 듯한 달콤한 상상을 선사했다. 그러나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의 눈앞에 놓인 것은 명백한 진실이 아닌 정제되지 않은 채 쏟아져 내려오는 정보와 이미지, 혹은 정보 제공자에 의해 교묘히 편집된 필터 버블뿐이었다.
미래를 가리고 있던 낙관의 연기가 걷히자 더는 무엇이 ‘진짜’인지는 중요치 않게 되었다. 초실감을 내세우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기술은 다양한 차원의 세상(universe)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더는 공상의 영역에만 한정하지 않게 만들었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뜨거운 감자였던 메타버스(metaverse)는 어설프게나마 다중현실의 맛을 보여주며 또 다른 현실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성큼 열어주었다. 그런데 가상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반대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 또한 먼 미래에 설계한 시뮬레이션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방증한다. (일론 머스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가상 세계가 아닌 진짜 세계일 확률이 10억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INSTALLATION VIEW OF “Butterfly Dreams”, 2024,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A-Lounge.

김도연, 윤지영, 이안 하, 이코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확실성의 시대가 마주한 현실을 인지하고 재현한다. 이코즈는 반복되는 꿈의 레퍼토리를 회화의 주제로 가져와 현실과 중첩된 시공의 틈바구니를 포착했다. 모호한 꿈의 공간은 <J-D> 연작에서 소실점으로 뻗어 나가는 선과 이를 분절시키는 전면에 배치된 사물들로 현시된다. 작가에게 회화적 공간은 기억과 무의식이 교차했다가 다시금 멀어지는 혼란의 서사를 내포하는 곳으로, 유년 시절의 기억을 배경으로 하는 꿈의 공간은 실재하지만 동시에 과장되고 절단된 허구의 옷을 입는다. 이로써 집요하게 기록해 실재를 지연시키려는 기대는 좌절되고, 꿈도 현실도 비껴가는 제3의 공간만이 자리를 내어준다.
이안 하는 과잉 정보에 허덕이며 인지 체계마저 와해한 작금의 세태를 평면 작업에 던져진 오래된 숙제에 대입한다. 회화의 공간이 항상 현실 세계를 모방한 환영에 불과하다는 2차원의 한계는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소환되고 지워지기도 하며, 공간의 실체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경험했다고 믿어지는 뚜렷한 기억을 배경으로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호출된 이미지의 잔재 또한 화면 속에 여기저기 편집되어 들어가 시공의 선형적 흐름을 방해한다. 우키요에의 구도를 연상시키는 <Twigs> 전면의 나뭇가지는 옹이처럼 묻어난 발자국을 따라 회화의 공간을 평탄화하고, <Daydream>, <Sweet Spot Within Riff>의 화면 중앙은 여러 겹이고 잘려나가 공간의 깊이 또한 교란된다. 마치 얼기설기 설켜 고장 난 기억 장치의 단면을 그려놓은 듯 편집된 풍경은 오히려 시공을 벗어나는 여러 개의 겹을 쌓아 미지의 차원으로 무한히 뻗어 나간다.
한편 어떤 것도 확실하다고 믿을 수 없는 세계에서 개인의 서사는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김도연과 윤지영의 작업은 현실에 천착하지만, 그 이면에 묻힌 서사에 주목한다. 윤지영은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이 사회 구조를 대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조형 언어로서의 소통을 감행한다. 몇 해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다준 공간과 소통의 단절은 자의식의 방향을 내부로 몰아넣었다. 내부를 가늠할 수 없는 흑색의 거울은 모든 상을 반사해내고 한쪽이 툭 불거져 터진 구형에는 간신히 두 팔을 맞잡고 있는 형태의 조형물이 비집고 나왔다. 분절된 신체와 깨져버린 완전한 구형(球形)은 견고하리라 믿었던 어떠한 실체도 부정한다. <곱씹어 끄집어낸_…‥>의 세 유기체적 형태들은 서로를 맞잡고 완연한 듯 보이나 팔은 모든 상대에게 닿지 않고 한쪽은 일그러져 불안을 자극할 뿐이다.
김도연은 언어의 구조를 뛰어넘는 몸의 서사로 너와 나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상상력의 가득한 신화의 세계는 화면을 가득 메운 세필의 선들로 재탄생했다. 인지 체계를 벗어나 작가가 감각하고 즉흥적으로 반응한 몸의 언어로 쓰인 회화적 표현은 마치 꿈의 서사와 같이 경계를 가로지른다. <피오피오타히(한 마리의 피오피오 새)>, <테와이코루푸푸(춤추는 모래)> 속 사람의 신체는 동물의 몸과 혼용되고, 성별의 구분 또한 모호하게 그려진다. 전경은 넓은 면으로, 후경은 세필로 묘사된 <산(알라딘)>은 해 질 녘의 따스함과 동틀녘의 어스름 그사이를 헤매며 미지의 공간으로 관람자를 초대한다. 어떠한 제약 없이 그려진 김도연의 인물과 풍경에는 약동하는 이상적 생명력이 가득하며 신체를 가득 메우는 심장 박동은 존재의 유일한 징표로서 나의 실재를 외연으로 넓힌다.
이제 우리는 현실을 정확히 감각하기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다.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붕 떠올라 손에 잡히지 않는 어딘가로 아스라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확실성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은 더는 우리에게 유효하지 않다. 미로와도 같은 시공의 협곡에 갇힌 한 마리의 나비가 ‘나’라면 어디로든 빠져나가지 않고 부유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해답일지 모르겠다. 무너져 버린 시공의 모습이 기괴하리라고 단언할 수 없고, 현실 이면에 켜켜이 쌓여있는 시공 사이를 허우적거리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도 아직은 유보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현실의 경계를 서성이며, 마치 장자의 꿈처럼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달큰한 환상 속에서 유유히 헤맬 뿐이다.

글 / 최하림 (A-Lounge 디렉터)

INSTALLATION VIEW OF “Butterfly Dreams”, 2024,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A-Lounge.

WEB     INSTAGRAM

2024. 8. 10. (Sat) – 8. 31. (Sat)

A-Lou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