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SOO HYEOK

신수혁
1967
South Korea

신수혁의 [critical point] 전의 주요 색감은 블루이다. 그 깊고도 다채로운 색감이 기계적 인쇄물

인 모눈종이의 선들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다소간 의외이다. 결코 하나의 색으로 규정될 수 없는

블루는 형이상학이나 신비주의의 원천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원천은 스템프 도장의

블루이다. 여권 등에 찍히는 스템프는 여행자가 경계를 넘는 중요한 행위의 합법성을 보장해 주

지만, 조형적인 면에서 볼 때 거의 아무렇게나 생겨난 것은 모눈종이와 마찬가지다. 스탬프 색

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탬프 지도 작업이 내 그림의 뿌리이기에, 스탬프 잉크

빛을 띤 블루컬러를 주로 사용한다. 물론 파랑이라 해서 다 같은 파랑은 아니다. [블루 노트] 전

에서는 인디고블루를, [멜티드블루] 전에서는 에메랄드그린을 썼다. 요즘은 울트라블루를 쓴다.

빛에 따라 농도를 달리하는 것도 그렇다…’ (2020년 [모닝캄]과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계열을 가진 블루는 ‘임계점’이라는 물리학적 전시 부제에 포함된 작품 키워드와 함께

모눈만큼이나 작은 차이로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한다. 임계점은 같은 분자로 구성된 물질의 배치

를 다르게 함으로서 질적 전화를 가능하게 한다. 근대 이후 지구생태계에 여러 악영향을 끼쳐온

인간의 생산/소비활동은 시한폭탄같은 임계점들을 편재하게 했다. 멀찍이서 그의 작품을 보면,

수직 수평 방향으로 촘촘이 그은 붓터치가 희미해져서 하늘색을 떠올린다. 같은 크기의 캔버스

가 나란히 걸릴 경우, 한 공간은 시간에 따라 다른 양태로 변모하는 듯하다. 인상파는 그러한

현상을 실시간으로 화폭에 기록한 바 있다. 신수혁의 작품에서 연상되는 하늘의 색/빛은 결코

고정되지 않고 시시각각 변화한다. 유사 이래 화가들은 이 살아있는 자연의 캔버스에 주목해왔

다. 신수혁의 블루는 엄청나게 다양한 뉘앙스의 ‘하늘색’이다. 빛의 산란에 의해 푸르게 보이는

하늘색 또한 심리적이거나 미학적이기보다는 물리적인 현상이다.

‘임계점’이라는 민감한 차이는 모눈 같은 정량적 기준과도 다른 그만의 필획에 있다. 그는 ‘공기

라는 매질에 빛의 부딪침의 과정이 산란 되는 상태가 압축될 때 시각으로 푸른 빛으로 감지된

다’고 하면서, ‘새벽 아침의 맑은 공기층,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대자연의 시작에서 오는 조용

함과 작은 울림, 미세한 시작들, 그리고 숨 쉼…반복되는 매일의 시작 그리고 새로움’을 말한다.

2015-16년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 작품의 형식은 그의 표현법대로 ‘선을 치는’ 단계이지 ‘선을

긋거나’ ‘선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치는 선은 시작이 있지만, 기하학에서 정의하는 대로 점에서

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 푸른 선들이 모눈종이 위에 그려진 청사진처럼 기원과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 이상의 첨삭이 필요 없는 어느 균형의 순간은 작가만이 감지하고

결정한다. 점과 점을 잇는 선은 설계 도면처럼 최초의 계획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기능을 가진다.

SHIN SOO HYEOK

신수혁 (b.1967)Art Project CO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16 트리마제상가 102호 I T. 02. 2088. 7567 I info@artprojectco.com I www.artprojectco.com I @artproject_co

하지만 신수혁의 가로선, 세로선의 붓질은 자신이 정한 규칙대로 자유롭게 화면을 활주한다는

것 외에 어떤 기능도 없다. 초창기 추상미술의 한 흐름인 기하학적 경향은 건축과 수렴하는 지

점이 있었고 그 예가 구성주의이다. 1920년대 전후에 바우하우스나 러시아 구성주의에서의 실험

인 ‘회화적 건축학’(류보프 포포바)이다. 이러한 ‘회화적 건축학’에서는 ‘추상적 형태와 패턴들로

구성’된 화면이 만들어졌지만, 신수혁의 작품에서는 추상적 형태에 환원주의적 분석’(포포바)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 디자인과 비슷해 보이는 규칙의 체택은 오히려 예술의 특징을

부각시킨다. 그 규칙은 공감이나 교감 같은 심미적 소통을 겨냥한다.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로로 또는 세로로 활주하는가는 형상들은 점과 선의 중간 같이 보인다. 이번 전시작품은 수직

/수평을 기준으로 선을 친다는 규칙만 남아 매일 빈 화폭과 마주한 작가의 반복과 차이의 유희

가 행해진 결과이다. 신수혁은 ‘수평의 시간 축에 수직의 시간 축이 겹침과 중첩의 연속으로 나

타나는 진행형의 상태에서 만나는 순간의 단면을 마주한다’고 말한다. 회화는 재현주의에 충실

했을 때도 순간의 단면이다. 공간의 예술인 회화는 서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연극적 동작의 전후

를 상황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대상의 재현을 부정하는 현대미술에서 순간

이란 또 다른 의미에서 지속의 일부분이다. 지속에 방점을 주는 미학은 회화를 초월하여 전신의

감각을 고무하는 연극성으로 확장 또는 해체되었다. 연작처럼 수행되는 신수혁의 작품은 한 작

품 안에, 그리고 작품들 사이의 관계 속에 지속을 내포한다. 작업은 한없는 몰입 속에서의 각성

이며 관객에게도 그러한 경험을 유도한다. 재현의 기술이 사진을 비롯한 다른 기계적 매체로 이

월되는 가운데 몰입은 예술을 특징짓는 체험이 되었다. 몰입은 작업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예술

적 몰입은 심신을 상하게 하는 중독이 아니라는 점에서 종교적 체험에 가까워질 수 있다.

작가는 ‘캔버스 위 가로선과 세로선의 느낌을 스트로크에 의한 터치로서 구축하고 있다. 내가

마주하는 매 순간은 연속과 진행의 수많은 반복 과정의 단면들이다. 그 스트로크에 의한 물감층

들은 평면이라는 구조를 드러내면서도 심연의 상태로 깊이를 느낀다…호흡에 의한 끊김과 이어

짐, 중첩 등으로 축적됨을 끊임없이 반복한다’고 하면서 ‘그 과정의 집적과 시간성은 나의 마음

을 정화시키고 무엇인가 농축되는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임계점’이라는 전시부제는 기계적 반

복이 아니라 질적 전환을 야기하는 차이를 암시한다.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와 색을 선택하는

신수혁의 작품은 미시적 차원에서 상태가 변이하는 순간을 비유하기에 적절하다. 필립 볼은 [물

리학으로 보는 사회-임계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르네 통이 정립했던 지질학의 격변설

(catastrophe theory)을 이용해서 사회에서 나타나는 작은 효과가 어떻게 갑작스러운 변화로 이

어지는가를 설명한 바 있다.

– 푸른 하늘의 단면을 담은 자연스러운 구조, 이선영 평론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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