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G SUE JIN

정수진
1969
South Korea

정수진에게 그림이란 “의식과 무의식이 맺는 관계성”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세상은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죠. 의식이라는 보이는 것과 무의식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이 합쳐진…. 무의

식이란 우리의 외부에 눈에 보이는 형태로 존재하지만 아직 우리의 의식이 인지하지 못한 세상이에요. 우리의

감각을 통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죠.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무

의식이라는 것도 단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지칭한 것이 아닐까요?” 정수진에게 그림이란 이 두 가

지 세상, 즉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의 접점인 ‘평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관계’를 고민하고, 자신이 인식하는, 그리하여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을 관찰하고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서로 상반된, 하지만 결국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야릇한 이분

법 앞에서 정수진은 ‘관찰’이라는 예술적 행위로 정면 돌파해왔다. 자신이 관찰한 것에 영향을 받는 것. 정수진

의 그림에 숨겨 있는 비밀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가 그의 그림에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도상, 즉 작가가 만

들어내는 갖가지 ‘상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수진의 그림은 작가가 구현해낸 그림 속 세상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에 생명을 불어 넣는 상징들을 빼놓고

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양파, 토마토, 촛불 같은 눈에 익은 사물이 있는가 하면, 신화 속 상징이나

상형문자를 떠오르게 하는 정체불명의 사물이 있다. 심지어 편의점과 같은 공간도 하나의 도상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정수진의 그림 속 도상은 미술의 비밀언어를 해독하는 문법으로서의 본래 의미를 철저히 거부한

다. “도상들과 그 배열은 기존의 상징적 의미나 관념, 이야기에 대한 연상을 피해가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그

것이 의미하는 것은 형상이 맺는 언어적 의미와의 모호한 연관성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으로만 보

기 위함이에요.”

도상이 무엇이던가? 미술사의 알레고리(allegory,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개념을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형식)와 의인화, 그리고 상징을 시각적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던가. 파노프스키가 도상

학(Iconologia)을 통해 미술 작품의 형태에서 주제나 의미로 미술사의 관심을 돌렸던 것처럼 도상이라는 이미

지를 설명하고 분류하는 연구 방식은 그림 속 비밀을 읽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정수진은 그림을 설명하

고, 해설하는 도상의 본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듯하다. “도상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건 아니죠. 우

리가 상징과 언어에 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는 거예요. 저는 그림에 도상을 새길 때 그것이 갖

는 원초적인 의미를 퇴화시키는 데 주력합니다. 언어의 껍질을 벗긴 후에 남는 시각적인 속성을 그림에 반영하

는 거죠. 생각지도 못한 ‘배치’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도대체 저 도상이 왜 저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거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미지로 남기게 되면 감상자들은 망설이게 되죠. 작가가 그린 시각적 결

과물은 완결된 이미지로 다가오는데, 정작 그것이 갖는 언어적 혹은 상징적 의미를 해석할 방법이 막막하거든

요. 그런 점에서 제가 그린 이미지들은 하나의 ‘껍데기’인지도 몰라요. 그림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림은

언어적 의미를 제거한 선과 색과 공간을 이루는 다층적인 시각요소라는 겁니다.”

미술가 정수진 –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미술가, 윤동희)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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